오페라 속 여성들은 자주 죽습니다. 병으로, 배신으로, 실연으로, 혹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나비부인』의 초초상, 『토스카』의 토스카, 『카르멘』의 카르멘. 그들은 모두 중심인물이었지만 서사의 끝에서는 비극적 퇴장을 맞습니다. 이 반복적인 패턴은 단순한 이야기 구성이 아니라, 그 시대가 여성을 바라보던 방식, 그리고 감정 중심 서사의 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오페라에서 여성들이 왜 그렇게 자주 죽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장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페라 속 죽음의 패턴 – 비올레타, 초초상, 토스카, 카르멘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는 병들어 죽습니다.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마지막 아리아 “Addio del passato”를 부르며 무대 위에서 조용히 퇴장합니다. 그녀는 남성들의 오해와 사회적 편견 속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감정의 고리를 닫습니다. 『나비부인』의 초초상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남성을 끝까지 기다리다 결국 자결합니다. 그녀의 죽음은 기다림의 끝이자, 서양 문명에 대한 굴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토스카』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후, 현실의 억압과 권력에 저항하며 성벽에서 투신합니다. 그 장면은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자존을 지키기 위한 극단의 선택으로 연출됩니다. 『카르멘』은 운명적인 자유를 외치며 도랭에게 살해당합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나는 자유롭게 태어났고, 자유롭게 죽는다”고 말하며, 패배보다 신념을 택합니다.
이 장면들의 공통점은 모두 아리아로 감정을 최고조까지 끌어올린 뒤, 갑작스러운 퇴장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오페라에서 여성의 죽음은 단순한 결말이 아니라, 감정의 정점을 위한 장치입니다. 이 구조를 음악적으로 뒷받침하는 방식은 종종 디미누엔도(Diminuendo, 점점 작아지는 음량)와 루바토(Rubato, 감정 흐름에 따라 박자를 유연하게 조절하는 기법)처럼 감정의 여운을 길게 남기는 방식으로 완성됩니다.
왜 여성만 비극적으로 퇴장하는가? – 시대적 시선과 구조
오페라가 가장 활발히 창작되던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는 유럽 사회에서 여성은 주로 ‘감정적 존재’, ‘희생자’, ‘이상화된 연인’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오페라 속 여성은 종종 수동적이며,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하지 못하거나 선택해도 그 결과는 죽음뿐입니다. 이러한 구성은 리브레토(Libretto, 오페라 대본) 단계에서 이미 구조화됩니다. 여성 캐릭터의 감정선은 대사보다 아리아 중심으로 표현되며, 그 감정은 독립적인 결단보다도 남성 캐릭터의 반응에 의해 고조되거나 무너지는 방식으로 설계됩니다. 즉, 여성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체가 아니라, 감정의 통로로 기능합니다. 여기에 더해 멜로드라마(Melodrama, 감정을 극적으로 과장하여 표현하는 연극 형식)의 영향을 받은 오페라 구조에서는 감정을 높이기 위해 죽음이라는 결말이 자주 채택됩니다. 특히 여성 캐릭터는 ‘고귀한 희생’, ‘비극의 상징’ 같은 형태로 이상화되며, 관객은 감정 이입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감동은 여성을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구조 위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비판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지금 이 구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 수동성과 재해석
현대의 오페라 관객은 이 죽음의 서사를 단순히 ‘슬픈 이야기’로만 소비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무대 위에서 반복적으로 죽어가는 여성 캐릭터를 본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함께 묻는 일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서사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거나, 무대 연출에서 여성 캐릭터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방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연출에서는 초초상의 죽음을 의식의 선택이 아닌 사회 구조에 대한 저항으로 재해석하고, 『카르멘』에서는 죽음을 당한 피해자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한 주체로 보여줍니다. 이처럼 기존의 구조를 재해석하는 작업은 단순히 연출 변화가 아니라, 시선을 바꾸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오페라 속 여성은 그저 죽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삶을 선택하는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장면을 ‘비극’으로 소비하기보다, 시대와 시선, 구조와 감정이 만나는 지점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런 인식은 리얼리즘(Realism, 현실성과 인간 심리를 중심에 둔 표현 양식)의 영향을 받아 현대 오페라 연출에도 반영되고 있으며, 고전 오페라조차 새로운 관점으로 재창조되는 흐름을 만들고 있습니다.
여성 서사의 재해석 – 죽음을 넘어선 감정의 주체로
전통적으로 반복되던 여성의 죽음은 최근 연출자들에 의해 비판적으로 해체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카르멘』입니다. 2017년 피렌체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결말을 바꿔 카르멘이 도랭을 먼저 쏘고 무대를 떠납니다. 죽음을 당한 피해자가 아닌, 폭력에 맞선 감정의 주체로 재설정된 것입니다. 『나비부인』은 제국주의적 시선에 대한 상징으로 바뀌었습니다. 2021년 네덜란드 국립오페라 무대에서는 초초상이 죽지 않고 퇴장하거나, 죽음을 서구 문명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처리합니다. 『라 트라비아타』는 감정의 해체 구조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로버트 윌슨이나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연출에서는 비올레타의 감정을 미화하지 않고, 거리두기와 조명 구성 등을 통해 그녀를 ‘타자화된 존재’로 처리합니다. 『토스카』는 종종 슬픔보다 ‘결단과 저항의 상징’으로 마무리되며, 단순히 사랑을 잃은 연인이 아니라, 억압에 맞서 끝까지 선택하는 인물로 변화합니다. 이런 연출은 단순한 감정 재현이 아니라, 우리가 감정 구조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었는지를 되묻는 작업입니다. 여성 캐릭터는 이제 감정의 도구가 아니라, 감정을 재정의할 수 있는 존재로 무대 위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오페라 속 여성의 죽음은 감정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시대가 만든 틀이다
오페라에서 여성이 자주 죽는 이유는 단지 극적인 효과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시대가 여성을 바라보던 방식, 감정을 설계하던 구조, 관객이 감동을 소비하던 패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감동을 더 이상 무비판적으로 소비할 수 없습니다. 그 장면은 아름답고 슬프지만, 동시에 시대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오페라는 시대와 예술, 감정과 시선이 만나는 장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페라 속 죽음을 그저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고 질문해야 합니다. 슬퍼하는 동시에 돌아보는 시선,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오페라를 보는 방식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