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리골레토』 속 “La donna è mobile(여자는 변덕쟁이)”는 오페라를 몰라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멜로디입니다. 그만큼 경쾌하고 대중적이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아리아가 등장하는 장면, 이탈리아어 가사와 해석, 음악적 특징, 연출과 감상 포인트, 그리고 사회적 맥락까지 함께 살펴봅니다.
어떤 장면인가? – 가벼움 속에 숨겨진 비극의 씨앗
『리골레토』는 권력자들의 위선과 조롱, 그리고 한 아버지의 절망을 그린 비극입니다. “La donna è mobile”는 공작 만토바가 여성을 경멸하고 희화화하며 부르는 아리아로, 그의 철저히 가벼운 여성관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문제는 이 장면이 ‘재미있게’ 들리지만, 이 노래를 부르던 공작의 행동이 결국 리골레토와 그의 딸 질다의 비극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공작 만토바 – 아리아에 담긴 인물의 민낯
공작은 카리스마 있는 남성이 아니라, 권력을 이용해 여성들을 손쉽게 유혹하고 버리는 인물입니다. 그가 부르는 “La donna è mobile”는 여성을 감정 없는 존재로 그리며, 그들의 눈물과 사랑조차 ‘변덕’이라는 말로 치부해버립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여긴 대상이 바로 리골레토의 딸 질다였고, 그 결과는 예기치 못한 파국이 됩니다.
원문 가사 + 한글 발음 + 번역
La donna è mobile qual piuma al vento
(라 돈나 에 모빌레 콸 퓨마 알 벤토)
여자는 바람 속 깃털처럼 변덕스럽다
Muta d’accento e di pensiero
(무타 다첸토 에 디 펜시에로)
말투도 생각도 바꾸기를 잘한다
Sempre un amabile, leggiadro viso
(셈프레 운 아마빌레, 레쟈드로 비조)
항상 사랑스럽고 우아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In pianto o in riso, è menzognero
(인 피안토 오 인 리조, 에 멘조녜로)
울든 웃든, 거짓된 마음이다
È sempre misero chi a lei s’affida
(에 셈프레 미제로 키 아 레이 사피다)
여자에게 마음을 맡긴 자는 늘 불행하다
Chi le confida, mal cauto il cor!
(키 레 콘피다, 말 카우토 일 코르)
그녀를 믿은 자, 조심하지 못한 그 마음!
가사 해석 – 차별의 노래인가, 풍자의 노래인가?
- “La donna è mobile”는 공작이 세상을 향해 웃으며 부르지만, 실은 ‘권력자들의 여성 비하적 언어’를 고스란히 담은 아리아입니다.
- 베르디는 이 아리아를 비극의 서곡으로 배치함으로써, 이 가벼운 가사 자체가 비극의 근원이 되는 걸 보여줍니다.
- 질다의 희생은 이 아리아가 단순한 농담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음악 구조 – 쉽게 따라 부를수록 더 씁쓸하다
- 리듬: 3/8 박자, 경쾌하고 빠른 템포 (Allegretto)
- 멜로디: 간결하고 반복적 → 대중성과 기억력 극대화
- 음역: 테너의 중고음 중심, 기술적 난이도는 높지 않지만 표현력 중요
- 종결부: “È menzognero!”에서 감정 강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통쾌한 부분
연출과 감상 팁 – '가벼움의 역설'
무대에 따라 이 아리아는 크게 웃으며 부르기도 하고, 술에 취한 듯한 제스처로 연기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질다를 유혹하는 장면이 이어지며, 리골레토가 멀리서 이 노래를 듣는 연출도 자주 등장합니다. 이때 관객은 ‘이 노래가 비극을 부르고 있구나’를 실감하게 됩니다. 감상 포인트는 ‘멜로디의 즐거움’과 ‘내용의 씁쓸함’이 충돌하는 데 있습니다. 이 아리아는 웃으며 들을 수 있지만, 듣고 나면 반드시 생각하게 되는 노래입니다.
대중문화 속 La donna è mobile
- 광고, 예능, 드라마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오페라 아리아 중 하나
-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등의 대표 레퍼토리
- 유쾌한 선율 때문에 개그나 패러디 소재로 자주 활용됨
- 다만 오페라 원작을 아는 이들에겐 ‘웃을 수만은 없는’ 곡으로 인식됨
웃음 뒤에 남는 쓴맛
“La donna è mobile”는 단지 유쾌한 노래가 아닙니다. 베르디는 이 아리아를 통해 공작의 철없는 여성관을 비판하고, 그로 인해 일어난 비극을 역설적으로 조명합니다. 관객은 처음엔 웃으며 따라 부르지만, 끝내는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다’는 씁쓸함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게 이 아리아는, 단순히 재미있는 곡이 아니라 ‘생각하게 되는 음악’으로 오래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