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조반니(Don Giovanni)』는 모차르트가 남긴 가장 강렬한 오페라이자, 가장 다의적인 작품입니다. 유쾌한 희극처럼 시작하지만, 마지막은 죽음과 지옥으로 끝나는 이 오페라는 인간 본능, 도덕, 권력, 쾌락과 책임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돈 조반니』의 줄거리, 주요 인물, 음악적 특징과 함께 이 작품이 왜 200년 넘게 해석되고 사랑받아 왔는지 알아봅니다.
쾌락주의자의 몰락, 극 속의 지옥
돈 조반니는 전설 속 바람둥이 ‘돈 후안’을 모티프로 한 캐릭터입니다. 귀족 신분을 앞세워 수많은 여인을 유혹하고, 거짓말과 권력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웁니다. 작품의 시작부터 그는 한 여인의 침실에서 도망치고, 그 여인의 아버지를 살해하면서 오페라는 ‘죽음’으로 막을 엽니다.
이후 돈 조반니는 거리에서 농민 신부의 신부인 체를리나를 유혹하고, 귀족 여인 도나 안나와 옛 연인 도나 엘비라를 동시에 속이며, 마치 죄의식 없는 신처럼 행동합니다. 그의 하인 레포렐로는 그의 모든 악행을 옆에서 지켜보며 관객과 이야기하듯 중계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러나 2막 후반부, 죽은 기사장의 동상이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급변합니다. 돈 조반니는 동상 앞에서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며 ‘저녁을 함께하자’는 초대까지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그는 지옥에서 온 듯한 음향 속에서 기사장의 손을 잡고 그대로 불길 속으로 끌려갑니다.
인물과 상징 – 도덕인가 본능인가
이 오페라는 단순한 악인의 응징극이 아닙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돈 조반니와 대조되는 위치에서 그를 바라봅니다.
- 도나 안나: 아버지를 잃고 복수를 맹세하지만, 슬픔과 분노 사이에서 감정을 숨깁니다.
- 도나 엘비라: 이미 조반니에게 버림받았음에도 그를 용서하고 회개하길 바라는 인물입니다.
- 체를리나: 농민 신분의 순수한 여인이지만, 조반니의 언변에 흔들립니다.
- 레포렐로: 주인과 거리를 두며 조롱과 순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합니다.
모차르트는 이 인물들을 통해 관객에게 계속 질문을 던집니다. “진짜 죄는 무엇인가?” “돈 조반니는 단순한 악인인가, 자유를 추구한 인간인가?” 그래서 이 오페라는 ‘도덕극’이면서도, 철학적입니다. 조반니는 끝내 회개하지 않지만, 그의 당당함에 불편한 공감이 생기는 건 이 작품이 단순히 악인을 벌하는 구조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음악 – 모차르트의 가장 연극적인 구성
『돈 조반니』의 음악은 희극과 비극, 현실과 환상, 웃음과 공포 사이를 넘나듭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오페라 부파(희극 오페라)와 오페라 세리아(비극 오페라)를 완벽하게 결합했고, 음악으로 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세밀하게 그려냈습니다.
- 서곡: 장엄한 d단조의 주제로 시작해 지옥과 죽음을 암시. 마지막 장면에서 이 테마가 다시 등장합니다.
- “Là ci darem la mano”: 체를리나를 유혹하는 이중창. 단순하지만 세련된 유혹의 선율.
- “Fin ch’han dal vino”: 짧고 빠른 리듬의 ‘술의 노래’. 조반니의 쾌락주의를 보여줍니다.
- “Madamina, il catalogo è questo”: 레포렐로의 카탈로그 아리아. 유머와 풍자가 결합된 명곡.
- 지옥 장면: 종소리, 불협화음, 급박한 템포의 전개로 오페라 사상 가장 인상적인 마지막.
모차르트는 각각의 인물에게 어울리는 음악어법을 정확히 배분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오페라의 긴장과 유머를 완벽하게 조율합니다. 이 작품은 음악이 ‘배경’이 아니라, 심리 그 자체로 작용하는 오페라입니다.
도덕의 심판인가, 인간에 대한 통찰인가
『돈 조반니』는 단순한 윤리적 설교극이 아닙니다. 그가 끌려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은 희열보다 섬뜩한 여운을 느낍니다. 그것은 조반니가 벌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어떤 변명도 없이 자신을 밀어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연출가는 그를 ‘악’이라기보다 ‘자유’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는 규범과 도덕, 사회적 요구에 무례하고 반항적이지만, 그 안에는 억압된 인간 본능에 대한 모차르트의 냉철한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결국 『돈 조반니』는 인간이 가진 욕망과 그에 따르는 책임, 그리고 그 대가에 대한 심리적·음악적 탐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 – 끝내 무너지지 않은 인간의 초상
『돈 조반니』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불에 휩싸여 사라지지만, 관객은 그를 쉽게 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 안에 담긴 유혹, 본능, 자유, 고집, 무책임함 같은 인간의 본성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오페라는 오늘날에도 전 세계 극장에서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고, 매번 다른 조반니가 탄생합니다. 웃음과 불안, 희극과 비극이 한 무대에 공존하는 모차르트의 이 오페라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돈 조반니와 조용히 마주하게 만듭니다.